교단 연혁


  본회의 연혁은 1906년 미국 LA의 아주사(AZUSA) 부흥회시 성령의 음성을 들은 메어리 럼시(Mary Rumsey) 선교사가 1928년 한국에 입국하여 오순절 성령운동을 시작한 이래 1932년 8월 박성산 목사와 그 익년에 배부근, 허흥 목사 등이 초기 지도자로 활동하였으나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하여 중단되었고, 1945년 8월 15일 조국 해방과 더불어 오순절 신앙 동지들의 규합이 모색되던 차에 미국 하나님의 성회 동양 선교부장이던 오스굿(Osgood) 목사의 내한으로 인하여 한국 선교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  이에 체스넛(A.B. Chestnut)선교사가 1952년 한국에 주재하게 되었고, 1953년 4월 8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에 소재하는 남부교회에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창립총회를 가짐으로서 교단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  이후 교단의 힘찬 부흥 발전이 거듭되던 중 1981년 회원들을 제명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이에 반발한 상당수의 회원 교회들이 별개의 총회를 구성하므로 교단이 분열되었다. 그로부터 4년 뒤 1984년 통합을 시도하였으나 이를 원치 않는 일부 교회들이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순복음)로 남았다. 
‌  1997년에 이르러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순복음) 총회 및 신학교 운영의 문제점이 크게 대두되었고, 따라서 뜨거운 감자였던 교단 공유재산의 사유화가 급기야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본안 문제 해결을 위하여 수개월에 걸친 노력이 있었으나 교단의 실질적 오너 노릇을 해오던 분의 양보가 전혀 없어 교단 정상화의 시도는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  이에 1997년 8월 뜻을 같이 하는 일부 목회자들이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순복음)를 탈퇴한 후,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1654-5의 주소지에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개혁) 교단을 창립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 조선 오순절 교회 일제(日帝) 1928년 3월 오순절 신앙을 전교하기 위해 럼시 선교사 내한(來韓) 
    구세군 본영에서 근무하는 허 홍을 만나 오순절 근거 마련.

→ 1930년   (04월) 팔선 선교사 입국.
→ 1931년   (06월) 영국 오순절교회의 메르테드, 벳시 두 여선교사 내한.
→ 1932년   (04월) 럼시 선교사, 허 홍 중심으로 서빙고교회 창립.(서빙고교회는 현재, 보광동 성광교회 전신)
→ 1932년   (10월) 일본에서 신학을 전공한 박성산 귀국, 서빙고교회 담임하다.
→ 1933년   (05월) 배부근 목사 귀국하여 메르테드, 벳시와 함께 수창동교회 창립. 팔선 선교사 떠나다. (조선 오순절교회 창립하다.)
→ 1936년   (05월) 한강에서 오순절교회 연합 침례식 조선 오순절교회 최초로 서빙고교회 백승학 장로 장립.
→ 1938년   (10월) 영국 오순절교회 카타, 셈무라 목사가 입국하여 박성산, 배부근, 허 홍 3인의 목사 안수.
→ 1939년   (10월) 럼시, 벳시, 메르테드 선교사 일제탄압으로 강제출국 당하다.
→ 1942년   일제 종교탄압으로 조선 오순절교회 해산.
→ 1943년   허 홍 목사 연희장교회 문을 열다.
 
☆ 해방 후 
→ 1945년   조국 해방 해방과 더불어 오순절 신학을 전공한 곽봉조, 윤성덕 목사 귀국하다. 윤성덕 목사 전남 광주의 진월교회 세우다.
→ 1948년   (10월) 박귀임 전도사 순천에 오순절교회 세우다. 김성환 목사 목포에 오순절교회 세우다.
→ 1949년   대한 오순절교회 재건
→ 1950년   6․25 전쟁 발발 종군(從軍) 목사 엘라우드(하나님의 성회 소속) 내한. 대한 오순절교회 허 홍 목사 등과의 연결.
→ 1952년   체스넛 선교사 한국에 하나님의 성회 결성하기 위해 입국.
→ 1953년   (04월 08일) 남부교회에서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창립.
→ 1953년   (05월) 순복음신학교 개교
→ 1953년   (10월) 광주에서 오순절교회 제 3회 성회 개최, 300명이 광주천에 서침례.
→ 1956년   (05월) 허 홍 목사 제 3대 총회장이 되다.
→ 1957년   세계적인 부흥사 허만 목사 중앙청 앞 광장에서 24일간 전도집회 인도.
→ 1957년   (11월) 허 홍 목사 중심으로 대한 오순절교회 분열. 종교법인 재단 등록, 박성산 목사 소천.
→ 1958년   총회장 존스톤 선교사 선임. 버드 목사 내한하여 수원, 대전, 부산 등지에서 성회 인도.
→ 1960년   대조동에 순복음신학교 건축 시작하여 12월 완공.
                    제9회 정기총회에서 지승권, 석상희, 박광수, 김찬석, 박광수, 김찬석, 박종수, 박정근 목사 안수 받다.
→ 1961년   순복음신학교 대조동 교사(校舍)로 이전하여 공부하다.
                    부흥사 샘 토드 내한하여 서대문 네거리 서커스터에 천막 을 치고 40여일 간 전도집회.
→ 1961년   (10월) 순복음부흥회관(현, 총회회관) 건립완공.
→ 1966년   정기총회에서 조용기 목사 총회장으로 선임되다.
→ 1967년   배부근 목사 은퇴
→ 1968년   정기총회에서 대조동신학교 새교사 신축 결정.
                    서울경기, 충청, 전라, 경상 지방회 넷으로 나누고, 지방 회장에 각각 박정근, 문재호, 석상희, 소교민 목사 인준.
→ 1969년   제18차 정기총회에서 헌법개정하기로 결의.
→ 1972년   (10월 24일) 분리된 대한 오순절교회와 15년 만에 통합하다.
→ 1973년   (8월) 세계오순절대회(P.W.C.) 제 10차 대회가 세계 39개국 1,500명 이참석한 가운데 여의도교회와 효창운동장에서 열리다.
                    1974년 제 23차 정기총회에서 세 번째로 교단명칭 변경안 부결되다.
                    이후로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이름 고수.
→ 1976년   (05월) 순복음신학 대학설립 기성회를 구성함(이사장 조용기 목사)
→ 1977년   (12월) 군포에 순복음신학교 건물 1동(766평) 신축 완공.
→ 1979년   (05월) 수십개의 개척교회를 지원한 마일스 선교사,
                    농아선교를 활착시킨 스트로브릿지 선교사에게 공로상.
→ 1980년   (03월) 민족을 위한 「전국교역자 구국금식기도」
→ 1981년   (05월) 교단 30주년 기념대회
→ 1981년   (12월 07일) 서대문측과 반포측으로 교단분열.
→ 1985년   (01월)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조용기 목사) 분열됨.
→ 1997년   (09월 01일)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 소영규 목사 측과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순복음) 신창균 목사측이 분열됨.

‌  새로운 교단이 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개혁)는 10명의 중진 목사들을 중심으로 총회본부와 8개 지방회를 설립하여 조직을 갖추었으며, 총회신학교와 청주신학원을 운영하여 1998년 3월 제 1기 학생 모집을 시작한 이후로 많은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  2013년 11월 28일 총회 본부와 신학교를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주로 155'로 이전하였고, 2021년에 다시 총회 본부와 신학교를 청주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